우리가 흔히 '화성 연쇄 살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이춘재의 끔찍한 범죄 행각은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닳고 닳도록 소비된 소재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말과 전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낱낱이 해체된 이 이야기를 또 다시 들고나온 드라마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솔직히 저는 "대체 여기서 더 할 얘기가 남아있나?"라는 강한 회의감과 선입견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미 뻔한 클리셰로 범벅된 늑장 수사나 자극적인 살인 묘사의 반복일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오늘 소개할 한국 드라마 추천작은 뻔한 줄 알았던 비극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조명한 범죄 스릴러 드라마 <허수아비>입니다.
1988년 시골 마을, 사체로 발견된 처녀들과 두 남자의 동행
이야기는 올림픽의 열기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1988년, '강성'이라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피로 물들인 의문의 사건들로부터 시작됩니다. 평화롭던 논밭과 풀숲에서 젊은 처녀들의 시신이 하나, 둘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두가 단순 실종이나 개별 사건으로 치부하며 갈팡질팡할 때, 이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단 한 명의 잔혹한 살인마가 벌인 동일범의 소행임을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눈치챈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토박이 형사 강태주(박해수 분)입니다. 그는 짐승 같은 촉으로 연쇄 살인의 냄새를 맡고 홀로 범인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참혹한 연쇄 살인의 냄새를 맡은 또 다른 탐욕스러운 하이에나가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아치울 준비가 되어 있는 냉혈한 검사, 차시영(이희준 분)입니다. 시골 마을의 연쇄 살인 사건이 자신의 출세 가도를 단숨에 열어줄 황금 동반자가 될 것임을 직감한 차시영은 이 추악한 판에 발을 들이밀게 됩니다. 정의를 위해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와, 오직 자신의 야망과 실적을 위해 범인을 선점하려는 검사. 각자의 불순하고 명확한 이유로 연쇄 살인마라는 하나의 타깃을 쫓는 두 남자의 기묘하고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강태주의 오랜 친구이자 당시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신문사 기자 서지원(곽선영 분)이 합류하면서 극은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던 88년 그 시대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사실 이 작품의 라인업을 보면 장르물 마니아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이력이 숨어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과거 대한민국을 사이다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드라마 <모범택시>의 신화를 창조한 콤비입니다. 특히 박준우 PD의 전직을 알게 되면 소름이 돋는데, 그는 과거 S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 Y>를 직접 연출했던 베테랑 PD 출신입니다. 실제 대한민국을 뒤흔든 강력 범죄의 최전선에서 취재를 담당했던 인물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그 시절의 시대상과 공기, 그리고 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집요하고 사실적일지는 보지 않아도 체감될 정도입니다.
시대가 낳은 또 다른 괴물들: 부정부패와 실적주의가 낳은 2차 비극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닳고 닳은 소재를 멋지게 탈피했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결정적인 이유는, 살인마의 잔혹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드라마 <허수아비>는 연쇄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진짜 알맹이는 1988년이라는 시대가 지니고 있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는 데 집중합니다. 오직 '실적'과 '까라면 까는' 군대식 성과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의 경찰과 검찰 조직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사건을 빠르게 종결 짓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 눈먼 실적 장사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해 하루아침에 살인마로 둔갑시키는 짓거리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되던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드라마는 그 무자비한 국가 권력과 시스템의 방관 속에서 철저하게 부서져 버린 2차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아주 깊숙하고 고통스럽게 조명합니다.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공권력의 횡포에 의해 두 번 살해당한 유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백발이 된 가해자들과 여전히 과거의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의 '현재'를 대조적으로 비춥니다. 과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그 시절의 죄악이 덮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묵직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생각거리와 여운을 남깁니다.
이 묵직한 서사를 힘 있게 끌고 가는 것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특히 박해수가 연기한 강태주 형사와 이희준이 연기한 차시영 검사는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저마다의 내면에 양면성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정의를 쫓지만 시대의 한계에 부딪히는 인간, 성공을 쫓지만 가슴속 깊은 곳 균열을 숨긴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이들이 화면에 잡혀 서로를 쏘아보며 대사를 주고받는 매 순간마다 팽팽한 텐션이 폭발하며 찰진 손맛을 선사합니다. 간접적으로나마 1988년 특유의 가라앉은 시골 마을 분위기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연출력 역시 몰입도를 높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완벽할 순 없다, 노년 연기의 어색함과 공중에 붕 뜬 캐릭터
물론 이 드라마가 모든 면에서 찬사를 받을 만한 무결점의 작품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아쉬움은 극이 과거에서 '현재' 시점으로 무대를 옮겨오면서 발생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주요 인물들이 나이가 든 '노년'의 모습을 연기해야 했는데, 이희준 배우를 제외한 다른 주연 배우들의 노년 분장과 노인 연기는 눈에 띄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젊은 시절의 에너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변조하고 느리게 걷는 연기는 극의 흐름을 뚝뚝 끊어먹는 요인으로 작용해 진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더불어 극 중 강태주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강순영'이라는 캐릭터의 활용법 역시 커다란 오점 중 하나입니다. 사건의 핵심과도 많이 멀지 않아 감정의 기폭제가 되어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서사 속에서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붕 떠 있는 듯한 이질감을 줍니다. 캐릭터의 행동 기제나 감정선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다 보니, 그녀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자꾸 물음표가 뜨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반드시 정주행해야 하는 이유
한국 드라마 추천작 <허수아비>는 이렇게 몇 가지 단점이 있지만, 최근 제작된 장르물 중 단연 압도적인 깊이를 자랑하는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 입니다.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사골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넓은 시각에서 시대를 조명하고 공권력의 해악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평단과 대중의 칭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지 맞추는 유치한 숨바꼭질에 지쳤다면, 범죄가 일어난 시대의 공기와 그 뒤에 남겨진 인간들의 고통까지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 묵직한 미스터리 추적극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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